Daeduk College Department of Model / 체계적인 실기훈련 및 학습과정을 통한 신체이미지를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실기능력을 갖춤은 물론, 이론적 토대를 갖춘 모델전문인과 광고전문인,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함양시켜, 고부가치를 창출
모델정보
  • 모델정보
  • 분야별모델
  • 국내모델시장
  • 해외모델시장
  • 추천사이트
모델정보
 
작성일 : 14-07-26 18:00
양의식 교수님의 나의 이야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711  

나는 막연히 내가 모델 감이란 생각을 가졌고, 그 꿈을 마음속으로 키워왔다. 모델이 되기에 나는 키도 작았고, 특별히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꿈은 80년대 초 대전에서 대학 재학중일 때 우연히 신문광고에 영화배우 선발대회 광고를 보고 무작정 상경하게 하였다. 오디션을 받은 나는 최우수 신인 남자 배우상을 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주최측은 회비 명목으로 50만원을 요구하였고, 나는 곧 그들이 회비를 노리고 계획적으로 만든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것이 내가 모델일을 하기위해 처음으로 상경한 것이었다. 상당히 낙심한 나는 우연치 않게 고등학교 선배님이신 CF 모델겸 영화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활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여관방을 전전할 수 밖에 형편없는 수입에 또한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꿈은 꺽이지 않았다.

활동하는 이 선배가 너무나 부러웠던 나는 선배를 졸라 여관방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방도 청소하고, 빨래도 하면서 모델 일을 배울려고 에이전시를 기웃거리고 돌아다녔다. 그당시 내 심정은 손이건 발이건 광고에만 나올 수 있다면하는 절박함 그 자체였다. 일년 동안 내가 했던 일은 모 아이스크림 TV CF 1 편과 기업 홍보 영화 단역이 전부였다. 그러나 일 년동안 얻을 수 있었던 것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이 계통의 인맥을 구축한 것이었다.

그 후 군입대. 군대 복무 중에도 나는 온통 모델 일에 생각이 쏠려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제대 후 모델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하여 외출과 외박때면 의상 카다로그를 구해와서 포즈연습, 연기연습 등에 몰두하였다. 군대 후배들이 들어오면 그들 앞에서 해보았고, 거울을 보고 수도 없이 반복 연습을 하였다.

군 제대후 다시 서울 변두리 지하실 단칸방에 숙소를 정하고 군에 가기 전 알아놨던 충무로에 자리잡고 있는 에이전시와 아는 사람을 찾아갔다. 그러나 3년 이라는 세월은 이 업계를 많이 변화시켜 놓았고, 그 선배들이나 에이전트는 이 계통을 떠나있었다. 처음 상경했을 때의 막막함보다 제대후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눈앞이 더욱 캄캄하였다. 지방 사람이라 의식주 문제도 역시 나를 괴롭히는 문제거리였다. 그러나 걱정과 고민을 한다고 주변 상황이 변하는게 아니지 않은가. 냉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현재 내가 모델일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반문하고 이에 따른 개발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었다.

막연하나마 나의 이미지에 맞는 출연가능한 제품과 꼭 출연하고싶은 브랜드를 구별하여 백화점에서 의상 카다로그를 구하고 광고를 수집하여 모델들의 옷입는 모습과 패션의 흐름을 파악하였다. 지하실 방에서 밤에는 밤새워 포즈를 연습하고, 낮에는 모델로서의 몸을 만들기 위해 헬스크럽에 나가 운동을 하였다. 물론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생각은 이런 노력들이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었다. 모델 들이란 선택을 기다리는 피동체이기 때문이다. 한 6개월동안 몸을 만들고 이미지 작업을 2가지 정도로 좁힐 수 있었다. 스포츠 웨어 모델, 신사복 카다로그로 나의 이미지를 설정하고 사진촬영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여러번 프로필 작업을 만들었다.

이 사진을 들고 처음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에이전트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에이전시가 이제 막 시작한 남자 모델 지망생을 반기겠는가. 그 때까지만 해도 어디인가 촌스러웠고, 자신감도 없어서 에이전시 문 앞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돌아서기가 수십번이었다. 용기를 내서 들어가면 자장면 배달원 취급을 받기도 했고, “사진 놓고 가세요”라는 쌀쌀맞은 대답이 전부였다. 천대아닌 천대를 받으며 설움의 시기를 보낼때마다 난 계속해서 나의 목표점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모 에이전시를 방문했을 때 그 곳 여사장이 내일 뭐하느냐고 묻더니 할 일없다면 여성청결제 광고가 있는데 명함판만하게 사진이 실리니 한 번 해보라고 권하였다. 모델료는 3만원이었다. 순간 무척 고민스럽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하겠다고 했다. 이미지가 좋지 않게 출발하는 게 아닐까가 고민스러웠지만, 이렇게 남들이 꺼리는 작은 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모델 에이전시는 나를 기억하고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이 흔쾌한 대답이 지금까지 내가 계속해서 모델일을 할 수 있게 된 첫 연결망이 되었던 것이다.

작은 일들이 간간히 있었고, 난 이런 광고 엑스트라 역도 열심히 임했고, 촬영장에서 사귄 에이전트들이며 다른 동료 모델들을 통해 많은 정보도 얻고, 나를 알려 나갔다. 하지만 엑스트라 일로 경제적인 면이 나아지기는 어려웠다. 한 번은 호출기 신문광고 촬영이 들어왔는데, 내게는 새로운 양복 정장이 필요했다. 내게 있는 유일한 2벌의 정장은 그 촬영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스러웠다. 결국 촬영 하루 전날 고민스러워하며 밤거리를 헤메다가 눈에 띄는 양복점에 들어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의상을 빌려 촬영을 마친적도 있었다. 힘들고 고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던 일을 한다는 것에 기뻐하며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갔다.

그러다 아주 우연치 않게 다른 모델이 펑크낸 맥주 광고 촬영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이 내게는 행운의 여신이었다. 이 광고는 매일 신문과 각 잡지마다 장식되었고, 광고주는 엄청난 물량공세를 펴면서 계속해서 광고했기 때문이었다. 난 이 광고를 스크랩해서 에이전시를 방문하여 다시 나를 홍보하였고, 서서히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이 광고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 때 깨달은 것은 어떤 일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잡지와 신문의 파급력은 상당했고, 많은 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나의 커리어는 확장되어갔다. 많은 광고주들이 나를 원했고, 나는 CF에서도 인쇄 매체 광고에서도 서서히 메인의 위치를 확보해 나갔다. 인쇄 광고, 의상 카다로그, 백화점 전단 등 엄청난 일거리를 소화해 나가면서 일일이 계획을 세워 겹치기 출연은 없는지, 경쟁사 출연은 아닌지 나를 더욱 점검하고 관리하였다. 시간엄수는 물론 겸손하려 노력했고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더욱 굵직굵직한 연결망을 구축해나갔다. 미팅이나 오디션을 나갈때는 내가 출연할 브랜드의 디자이너나 광고주들과 어느정도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사전에 공부했다. 또한 프로필 작업도 계속해서 병행했으며 그 사진들은 일일이 에이전시를 방문해 돌릴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일이 없는 날은 그 동안 출연했던 CF를 편집하고, 잘나온 신문, 잡지 광고를 스크랩하여 나의 포토폴리오를 채워나갔다. 이 포토폴리오는 계속해서 내가 일거리를 잡도록 도와주는 충실한 동반자였다. 나는 짧은 미팅의 순간에 내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 포토폴리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이는 주효했고 결국 CF는 150편 이상, 카다로그 400여권, 신문, 잡지 광고는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일할 수 있었다. 거의 한 브랜드를 최하 2년에서 5년까지 장수하면서 계약을 연장, 연장했고 당대 톱모델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방송국에서 한 프로의 연기자로서 제의가 들어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전문 모델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고, 전문 모델로서도 충분히 바빴으며, 나의 적소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제의를 거절하였다.

내가 모델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피나는 노력의 대가였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인 웃는 모습도 처음에는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고, 남자로서는 무척 작은 키인 175cm였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스케쥴과 프로그램과 철저한 자기 관리에 따라 자신을 개발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고, 이것이 내게는 최고의 전문 모델로서의 자리로 갖다 놓았던 것이다.

이런 열정과 모델 활동을 하면서 몸으로 배운 경험, 업계의 현실, 마케팅 전략, 인맥은 내게 새로운 적소를 찾게 했다. 바로 서울 문화예술원이라는 연기학원과 매니지먼트 사를 운용과 (사)한국 모델협회 부회장과 전남과학대학 모델 이벤트과 겸임교수가 그것이었다. 나는 나를 필요로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가있기를 진심으로 원했고, 거의 대부분 제대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도전하라. 자신의 꿈을 잊지 말고,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을 즐기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때부터 이미 충분한 교육과 연습으로 멋진 포즈, 표정, 연기력을 갖춘다면 아마도 더욱 많은 일거리가 보장될 것이다. 또한 이 충분한 훈련만이 여러분이 최고의 위치로 올라가게 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훈련, 또 훈련하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자신의 적소를 찾는다면 좋은 모델이 되는 것은 정말 시간 문제인 것이다. 노력하길.... 그리고 행운이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